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과 ‘미래를 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발전을 위함이고 ‘미래를 열어 주는 사람’은 자신을 희생시켜 남의 발전을 위함이다.
우리고장 진서면에 ‘운호’라는 마을 이름을 풀어 쓴 ‘구름호수마을’이란 푯말이 내걸린 이 마을에 가면 어린 꿈나무들에게 ‘미래를 열어주는 부부’가 있다.
5만원짜리 양복을 단벌로 수년째 입고 다니는 순박한 시골 촌뜨기 같은 남편과, 다른 사람이 얼굴에 인상만 붉혀도 금방 울어버릴 것 같은 소녀같은 아내, 이 부부가 이곳을 고향으로 삼고 살고 있다.
늘상 쉴틈없는 움직임으로 편안함 보다는 바쁜 생활속에서 행복을 찾고있는 이들 부부가 지역 주민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하다.
운호교회 담임목사를 맡아 목회활동을 벌이고 있는 남편 서정용(47) 목사와, 서 목사는 물론 운호교회 신도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운호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부인 최은숙(43) 센터장이 바로 이 주인공 들이다.
더욱이 남편의 목회활동 뒷바라지에 머물지않고 이 지역 어린이들에게 미래를 열어주고 있는 최 센터장의 활동은 지역주민들의 박수를 받고있음은 물론 타 지역 아동센터의 본보기가 되고 있어 부안의 자랑이다.
아무나 할 수 없고 쉽지않은 일인데도 “마음먹기에 달린 아무나 할수 있는 쉬운 일이다”고 겸손해 하는 최 센터장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일에서 우리 온 가족이 행복을 찾고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다.
이 부부 가족이 행복을 찾고 또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미래를 꿈꾸게 하고있는 운호교회가 자리잡고 있는 운호 마을은 시내버스로 한시간 반 가량의 시간이 소요되어야 부안읍내에 나올수 있는 오지 마을이다.
지금이야 변산반도를 찾는 관광객들의 차량이 줄을이어 오고가는 길목이지만 20여년 전만 해도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시내버스조차 하루에 두서너 번 지나가는 오지중에 오지마을이었다.
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들 부부는 10여년 전 이곳을 삶터로 삼기로 맘먹고 어린 자식들의 손목을 붙잡고 짐을 옮긴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는 우리고장 부안과의 인연이다.
최 센터장의 오지마을 삶은 부안이 첫 번째가 아니다. 신혼생활의 시작도 오지마을 이었다고 털어 놓는다. “편안한 삶에서는 절대로 행복을 찾을수 없다”고 말하는 최 센터장 부부는 오지마을과의 인연이 깊은 모양이다.
최 센터장은 대학 4년동안, “탱자나무 가시가 초록색으로 연하게 돋아나올 때는 말랑말랑 하지만 커서 굳어지면 단단해 져서 다른 사람은 찌르지요. 처음에 잘못을 저지를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잘못에도 감각이 없어져요.”라며 매번 의미심장한 이야기 꺼리로 다가오는 지금의 남편이 너무 편하고 재미있어 함께해 온것이 어느새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람으로의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신혼생활은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 산골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은 목회자가 새로 부임해 오면 2년을 버티지 못하고 떠난다는 오지 마을이다.
그저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할 요량으로 가 본 그곳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신혼생활의 터가됐다. 방에 들어앉으면 문을 걸어 잠가야 열리지 않을 정도로 벽이 밖으로 기울어진 집도 있고, 조선시대에나 지어졌을까 싶은 흙집이 대부분 있었다고 한다. 저녁때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고, 아무렇게나 쌓은 돌담 사이사이에 민들레가 흐드러지게 핀 마을 이었다. 새까만 아이들이 눈만 반짝이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빙그레 웃는 이 마을을 최 센터장과 서 목사는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곳에서 10년을 살면서 아이 넷을 낳은 이 부부는 그곳 아이들과도 친구가 됐다. 심지어 최 센터장이 아이를 낳으러 친정에 가있는데도 그 곳의 아이들은 “눈썰매를 타자”며 전화를 걸어오곤 할 정도로 친구같은 목사 부부였다고 이 마을 주민들은 귀뜸한다.
서 목사가 두번째 부임한 곳이 바로 운호 마을이다.
최 센터장 부부가 산촌에서 어촌으로 자리를 옮기자 친구들이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는다”며 놀려댔다고 한다.
큰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막내는 겨우 백일이었을 때이다. 바닷바람에 그을린 새카만 할머니들이 함박웃음으로 반겨주던 운호마을에서의 시작이 어느새 12년 째 이들을 머물게 하고 있다.
친구들은 “엉덩이가 무거워 앉았다 하면 10년을 넘긴다”고 놀려대지만 이들 부부는 이제 이곳이 고향이 된지 오래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 식구들과 마을 어른들은 늘 이들 부부를 애틋하게 돌봐 주었고 김치만 새로 담가도, 꽃게만 몇 마리 잡아도 밤이고 낮이고 “나눠 먹자”며 교회를 찾아오곤 한다.
이같이 인정 넘치는 주민들이 논밭에 나가 일을 하는 낮 시간이면 학교 파학 후 마땅히 놀곳이 없는 어린이들이 동네를 휘젓고 다니고, 사고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차도도 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 부부는, 항상 가족처럼 대해주는 주민들이 안심하고 논밭에서 일할수 있도록 마을 어린이들을 교회로 불러들였다. “아이들이 사택과 교회를 휘젓고 다니며 숨바꼭질, 경찰놀이, 술래잡기로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지만 우당탕거리며 뛰어노는 소리가 오히려 사는 맛을 느끼게 했습니다”라는게 최 센터장의 말이다.
그러나 이 부부는 어린이들을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온종일 데리고 놀 수만은 없었다. 이에 고민할 것도 없이 이 부부가 시작한 것이 글로벌 시대에 맞춘, 학년에 따라 하루에 다섯 개에서 스무 개씩 영어단어를 외우게 하고 피아노를 가르쳤다. 이에 덧붙여 한자를 알면 어휘력과 이해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하루에 다섯 개씩 한자를 가르치기도 했다.
가깝게는 20㎞, 멀게는 50여㎞를 나가야 학원수업을 받을수 있고 그도 가정형편이 따라주어야 가능했던 이 마을 어린이들의 교회 수업은 즐겁기만 했다.
사람은 욕심의 동물이라 했듯 최 센터장은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점점 욕심이 생겨 바이올린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는 최 센터장이 ‘무언가 좀 더 특별한 게 없을까?’ 고민하다 어릴 적 잠깐 배운 바이올린이 떠올랐던 것. 주저 없이 막내아이를 들쳐 업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정읍에 까지 바이올린을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고 동시에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생활이 5년이 흐른 어느 날, 우연히 교회를 찾은 한 공무원이 “왜 여기는 항상 애들이 북적거리냐?”며 “아동센터를 해보는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당시 “내 나름대로 내 할 일을 하고있고 또 만족해한다”고 거절했지만 아이들이 점점 자라면서 최 센터장이 해줄 수 있는 서비스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에게 배움있는 캠프나 현장학습을 보내고 싶어도, 특별한 교육을 위해 유능한 강사를 섭외해 색다르고 좀더 나은 교육의 기회를 주고 싶어도 능력의 한계가 있었다.
이에 부랴부랴 아동센터 등록을 한 것이 부안군 최초의 1호 아동센터가 운호교회에 자리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43명의 어린이가 방과 후 또는 방학 중 놀이터이자 배움터인 이곳은 항상 10여명이 가입을 대기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센터로 자리잡고 있다.
10년간 가르친 한자공부에 힘입어 이곳 어린이들은 공인 2급부터 6급까지 다양한 자격을 획득해 인근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뿐만아니라 영어 교과서 외우기 프로그램은 글로벌 해외연수자 2명, 필리핀 연수에 2명이 합격해 촌뜨기들의 뚝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틈틈이 익힌 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베이스기타, 오카리나 실력으로 1년에 한 번씩 지역주민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해 ‘촌놈’의 실력을 뽐내 보기도 한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는 말이 있듯 전문가가 보기에는 한없이 미흡한 실력들이겠지만 43명의 어린이들이 만들어내는 노래와 연주의 화음은 매번 최 센터장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곤 한다.
이 같은 사랑담긴 노력에 힘입어 운호지역아동센터는 전라북도 센터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손꼽히고 있음은 물론 최근들어 타 지역 센터 운영자들의 견학이 줄을 잇고, 곳곳에서 운영자 발표회에 초청발표를 권해오지만 어린이들에게 소홀해 질까봐 거절해 오고 있는 형편이다.
최 센터장에게 “43명의 어린이들이 어떻느냐?”고 물으면 “징허게 이뿐 새끼들…….”이란 한마디 이다. 더 이상 다른 표현이 없다. 그냥 징허게 예쁠 뿐이다.
전국 방방곡곡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현장학습을 체험케 하는것도 운호지역아동센터의 자랑이자 가장 즐거운 프로그램이다. 놀며 여행하며 아이들은 훌쩍 커버리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아이들과 케냐를 여행하기로 약속하고 부지런히 영어공부를 하는 중이다.
오늘밤도 열시까지 올망졸망 모여앉아 한자도 외우고 영어노래도 부르고 교육방송도 보며 재잘거리는 아이들이 운호지역아동센터에 모여 있을게다. 그곳에서 어린이들과 친구처럼 얽히고설키며 공부를 가르치고 있을 이 부부가 그림처럼 눈에 선하고, 이 같은 사람들이 부안에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밝은 모습 일게다.
“아이들을 살피고 가르치면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혜택을 많이 받고, 가장 많이 성장한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라고 말하는 최 센터장과 서 목사 부부에게는 이들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