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포면 원장동(元壯洞)마을
줄포면 장동리 원장동 마을은 줄포면사무에서 동쪽으로 장성마을을 지나 700m지점에 위치한 순농사 마을이다.
마을의 형성은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 부안김씨 일가가 천배산 주령에 정착하면서 형성하게 되었다고 하며, 이 마을에 위치한 천배산은 줄포소재지의 주령이며 줄포면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곳 천배산에는 토성이 있으며 토성의 길이가 300여m로서 이 성에서는 삼국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 등이 토출되고 있다.
이 토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고려시대에 재 축조 한 것으로 짐작되나 지금은 토성을 쌓았던 자리만 남아 있다.
신도비는 조선 선조 25년경(서기 1592년) 임진왜란 당시 보안면 출신인 해옹(나주공이라고도 함) 김홍원이 의병을 일으켜 이곳 천배산 성안에 훈련을 시켜왔는데 혹독한 훈련을 받은 의병 300여명으로 왜적과 수차례의 싸움에서 전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에도 이웃에 있는 장밭들(지금의 상서면 감교리) 전투에 참전해 용전분투하여 적을 섬멸하므로서 선조대왕이 그의 전공을 크게 칭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선조대왕은 그 공을 보답하기 위해 당시 훈련장이었던 천배산 일대는 물론, 이곳에서 사방팔방으로 내다보이는 토지 모두를 김공에게 하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로도 많은 전공을 세우고 이곳 천배산에서 지내다가 임진왜란 후에 나주목사로 부임한 후 세상을 떠났다.
그후 그 공을 길이 빛내고자 천배산 중턱에 묘를 만들어 기렸다고 한다.
장자골의 유래는 임진왜란 당시 인근 각처에서 훈련을 받고자 수많은 장사들이 모여 들었으며 임진왜란 후 일부 장사들이 남아 거주하게 되어 오늘의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다 한다.
조선조 말엽에는 줄포에 5일장이 성행하였는데 주로 어업으로서 인근 흥덕, 고부, 부안 일대의 많은 상인들이 이곳에서 5일장을 개장하여 어조류, 의류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바닷물이 많이 들어올 때면 많은 어선들이 이곳 줄포에 입항하여 어판장 또한 대성황을 이루었다.
한편 한때 8여가구 400여명의 인구가 정을 나누며 살아오던 원장동 마을은 현재 3대가 함께사는 황재원(40) 이장과 이행환(64) 부녀회장을 주축으로 40여세대 80여명이 가족처럼 정을 나누고 서로를 아끼며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