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간다
최광임
달팽이 개수대를 오른다
제 살 곳에 살지 못하는 것이 저 달팽이 뿐이랴만
언제 이 사막을 건널 것인가
연유를 묻지 않아도 여기, 지금 이곳
응, 나야 하고 말 걸어올 사람 하나 없는 건기의 도시
때때로 절박해지는 순간이 있다, 아직도
그곳엔 바람을 되새김질하는 감자꽃과
해질녘 주인이 전지한 넝쿨에 참외꽃 피겠지만
겹겹의 바람을 쟁이는 치마상추 잎 그늘에
깃들고 싶었을 달팽이를 안다
오늘도 도시는 번화하고 바람이 불었다
모두들 촛불 켜들고 광장으로 나갈 때에도
달팽이 건기의 도시를 횡단하며
자정 가깝도록 서걱서걱 초인종을 눌렀다, 그때마다
내 몸에서는 한 움쿰씩 초록물이 빠져나가지만
사막에서도 한 평생 살아내는 몇 종의 동물과 식물처럼
목메어 기다 가다 거기, 어디쯤
스쳐갔을 상추 잎에 스민 바람과 그늘 찾아
최광임 시인
부안변산 출생
전북 부안 변산 출생.
2002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내 몸에 바다를 들이고』, 『도요새 요리』. 디카시 해설집 『세상에 하나뿐인 디카시』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2015년엔 대전문학상을 수상.
2016년엔 EBS국어수능교재에 이 채택
2018년엔 중고등 국어교과서에 『세상에 하나뿐인 디카시』 수록.
현재 시전문 계간 《시와경계》편집인, 계간 《디카시》주간·한국디카시연구소 부대표.
두원공과대학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