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읍은 천혜의 관광자원을 옆에 둔 맛과 멋, 풍요로움을 두루 갖춘 시골형 도시다. 그러나 이 풍요로움의 이면에는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라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부안의 인구는 약 4만7천 명, 이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이 1만8천여 명으로 전체의 40%에 육박한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 상당수는 거의 매일 병·의원과 한의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가장 자주 마주하는 공간이 바로 터미널 사거리다. 병원과 약국, 시내·시외버스 터미널, 전통시장과 상가가 밀집한 이곳에서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하려면 횡단보도를 두 번이나 건너야 한다. 교통신호 체계 또한 보행자 중심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직·좌회전 신호가 켜진 상태에서 우회전 차량은 보행자 신호에 막혀 멈춰 서는 장면이 반복된다.
연세가 많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보행 신호에 맞춰 횡단보도를 건넌다고 가정해 보자. 제한된 시간 안에 교차로를 모두 건너기란 쉽지 않다. 이 불편을 줄이는 방법은 분명하다. 터미널 사거리에 대각선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것이다. 한 번의 신호로 교차로 전체를 건널 수 있다면 보행 거리와 대기 시간은 크게 줄어들고, 어르신들에게는 그 자체로 큰 배려가 된다.
대각 횡단보도의 장점은 편의에만 그치지 않는다. 보행 신호 동안 모든 차량이 정지함으로써 좌·우회전 차량과의 충돌 위험이 줄어들고, 보행자 사고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부안 시내 한복판을 보다 안전한 공간으로 바꾸는 작은 변화다.
비슷한 문제는 부안동초등학교 사거리에서도 반복된다. 등굣길마다 모범운전자회와 경찰, 학부모들의 교통봉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주공2차와 주공4차 등에 거주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두 번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쓴 채 신호를 기다리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실제로 로컬푸드 앞을 지나 동초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다 보면 보행 신호를 지키지 못하고 길을 건너는 아이들도 쉽게 눈에 띈다.
이곳 역시 대각 횡단보도를 설치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차량이 멈추는 구조 속에서 운전자 스스로 학교 앞 서행을 의식하게 되고, 아이들의 등·하굣길은 한층 안전한 통학로로 바뀔 것이다.
‘부안의 멈춤’은 길어야 1분 30초 남짓이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운전자들은 상가를 바라보고, 살아 숨 쉬는 부안의 거리를 느낄 수 있다. 주민의 불편을 줄이고 안전을 높이는 정책, 그것이 곧 복지다. 거창한 구호보다 생활 속 작은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