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조의 세계는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를 규정하며 변화하듯 우리의 삶 또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필자가 관조의 세계라는 단어를 귀담아들은 것은 지금부터 60년을 훌쩍넘어 중학교시절 국어 교사한테서 들었던 단어이다. 어느 작품을 대할 때 그 저자의 마음으로 들어가 작품을 이해해야만 작품의 진정성을 알수 있다는 것. 선생님의 말씀 따라 한때는 심층있게 책을 읽었고 자랑하기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세월이 흘러 많은 독서를 했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하얀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였을뿐 그 깊이를 모르고 책을 읽어 왔던것같다.
오래전 멋모르고 읽었던 책이 기억에 떠오른다.
“신은 죽었다” 왜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말했을까?
단순하게 보면 인간이 숭배해온 신의 죽음을 선언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니체는 그의 책 곳곳에서 기독교를 강하게 비판해온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시대였으며 심지어 니체의 아버지가 목사였다는걸 생각하면 그의 선언은 그 시대의 충격이었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신은 단순히 종교적 신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 (종교, 도덕, 학문적 진리)을 다 포함한다. 그런 점에서 신은 죽었다는 말은 곧 인간이 만든 절대적 기준이나 권위를 대상으로 한 사형 선고라 할 수 있다.
니체는 이렇게 생각했다.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신은 인간이 자기 안의 두려움과 나약함을 감추기위해 만든것이며 결국 인간의 자기 부정 같다는 생각이었다. 인간은 왜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고 신을 만들어 거기에만 의지하려 하는가? 이것이 니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 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더는 어떤 외부의 권위에도 의지하지 말자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주인의 삶을 살자” 바로 이것이 그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배경이었다.
주인의 삶.
우리는 흔히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취업하고, 돈 벌고, 가족을 부양해야만 하는 현실은 자기 생각만 고집하기에는 위험이 크다. 그렇다고 자기 생각을 양보하고 타인 기준을 따르면서 강한 사람의 말을 추종하다 보면 타인의 노예가 되고만다. 노예 의식은 자기선택을 두려워하고 결과를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 안전한 추종을 선택하는 마음가짐이다. 강자나 권력자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진리처럼 섬기다 보면 자신감은 없어지고 다른 사람이나 권위에 의존하게 된다.
주인의식은 항상 자기 가치의 확신으로 가득 차 있어 자신만만하다.
자기의 욕망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신있게 사는삶, 자기 가치를 긍정하기 때문에 내면에는 항상 단단한 의지가 넘친다. 자기가 행복하니 다른 사람의 삶도 자연스럽게 존중할 수 있다.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주인의 삶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행복을 누릴수 있을 것이다.
니체는 말한다.
삶은 의무가 아니라 놀이가 되어야 한다고 장자의 "소요유"를 연상하는 명언이다. 동서양을 떠나 아름다운 사상은 언제나 함께함을 느끼게한다.
언제나 여유로운 마음으로 모든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