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에서 시작된 작은 발걸음이 있다. 이름하여 ‘새만금 RE100 국가산단 부안 유치 범군민추진위원회’, 일명 알부유. 그들의 걸음은 단순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이어진 발걸음은 단순한 지역 현안 해결을 넘어, 이 땅의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되묻는 절박한 행로였다. 그러나 그 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는 듯한 현실, 그 앞에서 추진위원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대부분이 지역의 노인(?)들인 이들은 생업과 일상을 뒤로한 채 길 위에 섰다. 그들의 어깨 위에는 단순한 민원이 아닌, 지역의 미래가 얹혀 있다. 160여 개 사회단체가 힘을 모아 발대식을 열고, 군민의 성원 속에 궐기대회를 치르던 그날만 해도 이 길이 이렇게 험난할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때는 희망이 있었다. “이제는 되겠구나” 하는 기대, 그리고 지역 정치인들이 이미 길을 닦아놓았다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부 부안 정치인들은 이들의 움직임을 두고 “우리가 다 해놓은 일을 왜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비아냥을 던졌다. 처음에는 그 말이 오히려 희망처럼 들렸다고 한다. 이미 준비된 일이 있다면, 조금만 힘을 보태면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곧 산산이 부서졌다. 추진위원들은 직접 확인에 나섰다. 새만금개발청을 찾고, 전라북도청을 방문했다. 이어 농림축산식품부와 국무조정실, 산업통상자원부, 그리고 대한민국 국회까지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들은 답변은 단 하나였다. “부안에는 국가산업단지 지정 계획이 없다.” 이 한 문장은 그동안의 모든 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겨우 1인시위 한두번으로 할 일을 다 한것마냥 정치인들이 자신 있게 내놓았던 ‘답안지’는, 알고 보니 채점조차 되지 않은 빈 종이였던 셈이다. 추진위원들이 느낀 허탈감은 단순한 실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배신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들은 묻는다. 왜 확인도 되지 않은 말을 군민 앞에서 사실처럼 말했는가. 왜 노력하고 있다는 말 뒤에 아무런 결과도 없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왜 지역의 미래가 걸린 문제를 이토록 가볍게 다뤘는가. 그러나 분노에만 머물 수는 없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추진위원들은 다시 길을 나섰다. 방법을 찾기 위해, 가능성을 붙잡기 위해,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줄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다. 그 과정에서 정부 관계자들이 말없이 가리킨 방향이 있었다. 바로 이 사업의 실질적인 ‘칼자루’를 쥐고 있는 지역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그 문턱은 높았다.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정치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치가 없고, 책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침묵이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주민들이 나서고, 노인들이 길 위에 서고, 민간이 정치의 빈자리를 메우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작은 변화의 조짐은 있었다. 간절함이 닿았던 것일까. 일부 국가산업단지 지정이 검토되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아직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다. 확정된 것도 아니고, 규모 또한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란 단어 하나가 이들에게는 다시 걸을 이유가 되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묻는다. 정치는 무엇인가. 선거때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정치인가. 이미 다 해놓았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정치인가. 아니면 주민들이 길 위에서 확인해야만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지금의 정치인가. 부안의 현실은 냉정하다.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한 사업 앞에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부안의 인물 하나 없다’는 자조가 흘러나온다. 이는 특정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며, 동시에 유권자의 선택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정치인의 말은 곧 약속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부안에서 확인된 것은 약속이 아닌 ‘공허한 선언’이었다. 계획도, 실행도, 책임도 없는 말의 향연. 그 끝에서 주민들은 스스로 길을 찾아야 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우리 지역에는 인물이 없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인물을 선택해왔는가”로. 정치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의 판단과 감시 속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부안이 겪고 있는 이 혼란 역시 우리 모두가 함께 돌아봐야 할 문제다. 알부유 추진위원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 걸음은 단지 국가산단 유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진 신뢰를 다시 세우기 위한, 그리고 정치의 본래 자리를 되찾기 위한 고된 여정이다. 부안의 정치인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의 답안지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오는 6월 3일 군민들이 답할 차례다.
최종편집: 2026-04-25 23: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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