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군 하서면 장신리 일원에 최근 새로운 추모공간이 문을 열었다. 이름은 ‘부안노을자연장’이다. 부안군이 군민들의 장례 부담을 덜고 친환경 장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추진해 온 공설 자연장지 조성사업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 것이다.총사업비 84억원이 투입됐다. 증가하는 화장 수요에 대응하고 자연친화적인 장사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시설이다. 잔디형 자연장 5천500기와 수목형 자연장 1천600기 등 모두 7천100기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화장한 유골을 잔디 아래나 수목 주변에 안치하는 자연장 방식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면서도 자연과 함께 고인을 모실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그동안 부안에는 공설 자연장지가 없어 군민들이 다른 지역의 장사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시간적·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부안노을자연장의 개장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시설 자체만 놓고 보면 군민들에게 필요한 공간임에 틀림없다.그런데 현장을 찾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에 적힌 문구다.“방문을 환영합니다.”순간, 이 문구가 과연 이곳의 성격과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환영’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서 ‘오는 사람을 기쁜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를 초대하거나 손님을 맞이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박람회장이나 관광지, 축제장, 공공기관의 행사장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친절하고 정겨운 표현이다.하지만 이곳은 어떤 곳인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함께했던 부모를 보내는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배우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곳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며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찾아오는 곳이다. 그런 공간에서 상주와 유가족을 향해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물론 이 문구를 만든 사람에게 악의가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행정기관을 방문하는 주민들에게 친절한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의도였을 수도 있다. 자연장지를 찾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겠다는 의미로 사용했을 수도 있다.하지만 행정의 언어는 의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장례와 추모처럼 사람의 감정이 가장 깊어지는 공간에서는 단어 하나에도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한다. 장례는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예의이자, 남겨진 사람들이 슬픔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사시설은 단순한 ‘시설’이 아니다. 고인의 마지막 안식처이며, 유가족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을 정리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추모공원이나 자연장지를 살펴보면 공간의 성격에 맞는 문구를 고민한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그리운 이가 있어 그리운 곳.”“사랑은 기억으로 영원합니다.”“그리움이 머무는 쉼의 공간.”“사랑을 품고 추억을 이어가는 곳.”짧은 문장들이지만 그 안에는 고인을 기억하고 유가족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공설 추모공원이라면 공공시설로서의 품격과 따뜻함을 담고, 민간 추모공원이라면 보다 감성적인 표현으로 방문객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런데 부안노을자연장의 첫인사를 보자.“방문을 환영합니다.”어쩐지 추모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부안노을자연장’이라는 이름에는 오히려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부안의 노을은 어떤가. 하루의 끝에서 가장 붉고 아름답게 빛나다가 조용히 사라진다. 사람의 삶도 어쩌면 노을과 닮았다. 태어나 성장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생의 마지막을 맞는다. 그러나 노을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아름다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사랑했던 사람의 삶 역시 마찬가지다. 육신은 떠나도 기억은 남는다. 목소리와 표정, 함께했던 시간과 추억은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살아간다.그렇다면 ‘부안노을자연장’이라는 이름부터 고인의 삶과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노을처럼 아름답게 기억되는 곳.’‘그리운 마음, 노을처럼 머무는 곳.’‘사랑하는 이의 기억이 머무는 곳.’조금만 고민했다면 이처럼 공간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표현도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입간판 하나의 문구가 자연장지 전체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84억원을 들여 조성한 시설이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네 글자 때문에 잘못된 시설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행정의 품질은 거창한 사업비나 시설 규모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민들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부분에서 행정의 세심함이 드러난다.시설을 얼마나 크게 만들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 시설을 이용할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그곳을 찾는지 헤아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장례와 추모의 공간은 일반 행정시설과 달라야 한다.청사를 찾는 민원인에게는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해도 좋다. 관광지를 찾는 관광객에게도 “환영합니다”라는 말은 적절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 위해 찾아온 유가족에게는 조금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잘 오셨습니다”라는 말조차 조심스러울 수 있는 곳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환영이 아니라 위로이고, 반가움이 아니라 배려이며, 안내보다 먼저 건네야 할 것은 고인에 대한 존중이다. 이것이 추모공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정서가 아닐까.더 아쉬운 것은 이 문구가 설치되는 과정에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입간판을 제작한 사람도, 검토한 사람도, 결재한 사람도, 현장을 점검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이곳에 ‘환영합니다’라는 표현이 적절한가?”라고 묻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행정의 한계를 생각하게 된다. 행정은 규정과 절차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감각도 필요하다. 특히 주민의 삶과 죽음, 복지와 문화, 추모와 장례를 다루는 행정이라면 더욱 그렇다.공무원에게 필요한 것은 법령을 정확히 적용하는 능력만이 아니다. 정책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생각하는 공감 능력도 필요하다.“이곳을 찾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 사람은 지금 어떤 마음일까?” “이 문구를 보고 어떤 느낌을 받을까?” 이 세 가지 질문만 던졌어도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는 아마 다시 검토됐을 것이다.행정의 작은 실수가 때로는 행정 전체에 대한 인상을 결정한다. 거액의 예산을 들여 훌륭한 시설을 만들어 놓고도 현관에 붙은 문구 하나가 이용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면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더구나 자연장지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즐기기 위해 찾는 공간이 아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찾아오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그곳의 언어 역시 일상의 언어와 달라야 한다. 조용하고 따뜻해야 하며, 무엇보다 고인과 유가족에 대한 존중이 담겨야 한다.‘환영’이라는 단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장소가 문제다. 말은 맞는데 장소가 맞지 않을 수 있다. 문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정서적으로는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행정의 언어는 바로 이 ‘정서’를 살펴야 한다. 좋은 행정은 법에만 맞는 행정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에도 맞는 행정이어야 한다. 부안노을자연장이 군민들에게 사랑받는 추모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그곳을 찾는 모든 유가족이 고인을 편안히 보내고, 함께했던 아름다운 기억을 가슴에 담아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그리고 가능하다면 입구의 문구도 한번 다시 살펴보기를 권하고 싶다. 거창한 예산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새로운 시설을 다시 짓는 일도 아니다. 입간판 하나를 바꾸면 된다.하지만 그 작은 변화가 전달하는 의미는 결코 작지않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대신 “그리운 이의 기억이 머무는 곳”이라고 써도 좋고, “사랑하는 이와의 추억을 품는 곳”이라고 해도 좋다. 혹은 부안의 노을을 담아 “노을처럼 아름다운 기억, 이곳에 머뭅니다”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중요한 것은 문구의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이다. 사람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공간에는 사람을 향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부안노을자연장이 단순히 유골을 안치하는 시설이 아니라, 떠난 이를 기억하고 남은 이의 마음을 위로하는 ‘추모의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그리고 그 첫인사부터 달라졌으면 한다. 환영보다 위로를, 반가움보다 존중을, 시설보다 사람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행정으로 말이다. 어쩌면 행정의 품격은 84억원짜리 시설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입구에 적힌 몇 글자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부안노을자연장의 이름처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따뜻한 노을 하나가 오래도록 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종편집: 2026-08-13 10:01:18
최신뉴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네이버블로그URL복사
실시간 추천 뉴스
교육/문화
읍.면 네트워크
가장많이본뉴스
제호 : 부안서림신문 본사 : 전북 부안군 부안읍 번영로 177(2층) Tel : 063-584-7070 e-mail : buannews@hanmail.net
발행인 : 이석기 편집인 : 이석기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기 청탁방지담당관 : 이석기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이석기
Copyright 부안서림신문 All rights reserved.